인터뷰 - 숙명여대 법학부 홍성수 교수

기자명 김민진 기자 (kmjin0320@skkuw.com)

소수자에 대한 혐오 표현의 위험성을 견지하고 이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가 전 세계적으로 차츰 높아지고 있다. 숙명여대 법학부 홍성수 교수는 사회적 소수자를 향한 혐오 문제를 다루는 학술 세미나 및 연구에 활발히 참여하는 법학자다. 그를 만나 세계에서 혐오 표현 찬반 논의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국내법의 혐오 표현 규제 동향, 그리고 앞으로 혐오 표현의 대응이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에 대해 들어보았다.

 

혐오규제 찬반논의, 세계인의 도마 위로 오르다

세계적으로 혐오 표현 논쟁이 법학계의 연구 주제로 떠오른 것은 언제부터인가.

소수자 혐오의 역사는 아주 길다. 하지만 혐오 표현 규제 문제가 찬반 논쟁으로 번진 것은 10년도 되지 않은 최근의 일이다. 유럽 같은 경우는 이주자, 이슬람에 대한 혐오 문제가 대두되면서 논쟁이 촉발되었고, 미국 역시 혐오 표현에 대한 문제가 본격적으로 제기된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현재 혐오 표현 규제 찬반 논의는 혐오 표현을 규제하는 유럽식 모델과 혐오 표현을 규제하지 않는 미국식 모델로 크게 나뉜다. 두 가지 모델이 어떻게 다른가.

먼저 유럽식 모델은 혐오 표현의 해악을 인정하고, 이를 규제하자는 입장이다. 혐오 표현은 소수자에 대해 잠재적, 직접적으로 차별을 야기하기 때문에 이에 대한 형사처벌이 필요하다고 보는 것이다. 반면에 미국식 모델은 혐오 표현을 형사처벌로 규제하는 것에 반대한다. 가끔 미국식 모델이 혐오 표현 규제 자체를 반대한다고 오해하는 분들이 있는데 미국은 혐오 표현이 문제라는 것은 인정하지만 형사처벌보다는 다른 대응수단을 강구해야 한다는 입장이라고 보는 것이 정확하다. 실제로 미국은 혐오 표현을 교육이나 사회문화적 여건의 개선으로 해결하고자 하거나, 대학, 기업 등 위계가 존재하는 상황에서의 혐오 표현만을 규제대상으로 삼고 있다. 따라서 미국과 유럽의 차이는 혐오 표현에 대한 대응방식의 차이라고 보는 것이 적절하다.

이러한 차이가 발생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각 지역이 겪은 차별적 경험과 더 중요시하는 가치가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유럽의 경우는 홀로코스트같이 혐오 표현으로 인한 직접적인 폭력을 경험했기 때문에 혐오 표현을 초기 단계에서 근절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한 편이다. 반면 미국은 유럽처럼 혐오로 인한 대규모 폭력 사태를 겪은 경험이 크게 없다. 또한, 미국은 전통적으로 ‘표현의 자유’의 중요성을 강조해왔으며, 표현의 해악은 더 많은 표현으로 자정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에 규제에 대한 거부감이 있는 편이다.

국내에서의 혐오 표현, 규제는 어떻게?

국내에서 혐오 표현 규제 논의가 처음으로 등장한 배경은 무엇인가.

예전부터 혐오 표현에 대한 문제의식은 있었지만, 본격적으로 규제 논의가 나오게 된 것은 2013년 ‘일간베스트 저장소(이하 일베)’라는 인터넷 게시판이 사회문제로 떠오른 이후라고 볼 수 있다. 표현의 자유를 가능하면 넓게 보장해야 한다는 입장을 가졌던 소위 진보진영에서 일베의 혐오 표현을 규제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보수진영이 이에 반박하면서 혐오 표현 규제 논쟁이 본격화된 것이다. 그 후에도 혐오와 차별이 사회적으로 확산되어가면서 혐오 표현 규제 문제가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혐오 표현에 대해 어떤 법적 조치를 취하고 있는가.

사실상 없다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앞서 말한 유럽과 미국식 모델 둘 중 어느 곳에도 속하지 않는 제3의 경우다. 국가인권위원회법에서 차별 행위를 금지하고 있기 때문에 혐오 표현을 차별행위의 일종이라고 해석할 여지는 있고, 혐오 표현의 일부가 형법상 명예훼손죄나 모욕죄로 처벌될 수는 있지만, 이를 혐오 표현 자체에 대한 본격적인 대응이라고 볼 수는 없다. 한마디로 혐오 표현의 확산을 효과적으로 막지 못하고 있는 상태라고도 볼 수 있다. 혐오 표현을 규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일부 보수개신교 세력들의 반대로 인해 더 이상 진전이 없는 상태다.

앞서 말한 명예 훼손죄와 혐오 표현 규제법의 본질적인 차이는 무엇인가.

규제 대상이 다르다. 명예 훼손죄는 특정된 개인이나 단체를 대상으로 해야 한다. 예를 들어 전체 외국인 노동자를 혐오하는 행위는 명예 모욕죄나 명예 훼손죄로 규제될 수 없다. 특정 노동자 개인에게 혐오 표현을 내뱉었을 때만 명예 훼손에 해당할 수 있다. 결국 법적 공백은 개인이나 단체로 특정되지 않은 혐오 표현이다. 이러한 문제영역을 규율하기 위해 혐오 표현 규제법이 필요하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이다.

우리 학교 게시판에 성소수자의 의견이 담긴 대자보가 붙어있다. 이 역시 차별과 혐오에 맞서는 카운터 운동의 한 종류다.

법적인 제재를 통해 소수자에 대한 혐오의 인식개선도 가능할까.

법의 기능 중에는 가해자의 처벌도 있겠지만, 상징적, 표현적 기능이라는 것도 있다. 혐오 표현 규제법은 ‘우리 사회에서 혐오 표현이 금지되고 있다’라는 메시지를 법을 통해 주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법적인 제재는 가해자 처벌뿐만 아니라 교육의 기준이 되거나 인식개선에 도움이 될 수 있다.

아직 혐오 표현 논의에서 조명받지 못하고 있는 소수자 집단이 있다면.

혐오 표현의 주요 표적 집단으로는 성소수자, 여성, 외국인, 장애인 정도를 생각해볼 수 있다. 하지만 유의해야 하는 것은 현시점에서 그렇다는 것이지 표적 집단의 범위는 얼마든지 확장될 수 있다. 예를 들어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종교적 소수자에 대한 혐오 표현은 많이 보고되진 않고 있다. 하지만 이미 소수종교에 대한 차별이 가시화되고 있어서, 이 문제가 더욱 부각될 수 있다. 할랄 공장 반대나 대학이나 공공기관의 기도실 설치 문제를 둘러싸고 그러한 조짐이 이미 있었다. 앞으로 종교에 대한 혐오 표현을 주의 깊게 봐야 한다는 것이다.

2014년 일본 도쿄에서 한국인을 대상으로 한 혐오 표현에 반대하는 카운터 운동에 참여한 일본 시민들이 행진하고 있다.
ⓒ <레이버넷>

인권법학자가 말하는 혐오 표현 대응 방법

혐오 표현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의 하나로 연대를 제시하고 있다. 어떤 방법인가.

혐오 표현이 심각한 문제로 고려되는 이유 중 하나는 혐오 표현이 선동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혐오 표현자들은 선동을 통해 혐오의 지지 세력을 넓히고 소수자를 고립시킨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소수자들과 연대하여 오히려 혐오 표현을 하는 이들을 고립시킴으로써 혐오 표현의 확산 경로를 차단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러한 대항 운동을 ‘카운터(Counter) 운동’이라 하는데, 차별받는 소수자와 연대하는 운동이다. 카운터 운동은 표현, 시위뿐만 아니라 일상에서도 실천할 수 있다. 가령 카카오톡 같은 메신저에서 누군가 혐오 표현을 올렸을 때, 동조하지 않고 이의제기를 하면 오히려 혐오 표현을 한 사람이 고립된다. 이러한 연대를 통해 혐오를 고립시키는 것인데, 이것은 혐오 표현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효과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

대학사회에서는 혐오 표현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당장 한국에서 혐오 표현규제법을 만들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대학 등 가능한 곳에서부터 먼저 혐오 표현에 대한 문제의식을 확산시킬 필요가 있다. 미국에서도 1990년대 대학사회 내에서 *표현강령(Speech Code)을 만들어서 혐오 표현을 규제하려고 했던 시도가 있었고, 혐오 표현에 대한 문제의식이 확산되는 계기가 되었다. 우리도 대학에서부터 소수자 혐오 표현을 금지하는 자치규약이나 학칙을 제정하고, *진정을 접수하여 처리하는 인권센터를 설치하는 식으로 문제를 풀어갈 수 있다. 이러한 대학 사회의 움직임을 시작으로 사회에 만연한 혐오 표현 문제의 돌파구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기사 도우미

◇표현강령(Speech Code)=미국의 사회단체·기업·학교 등에서 소수자에 대한 혐오 표현을 자체적으로 금지하는 표현 강령이자 가이드라인.

◇진정=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나 기타의 공적 기관에 대하여 국민이 사정을 진술하고 어떤 조처를 취하여 주도록 요청하는 행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