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유은진 기자 (qwertys@skkuw.com)

 
‘그래피티 아트’는 허가 없이 거리에 그리거나 붙인 그림을 통칭하는 말이다. 형식, 재료, 환경에 구애받지 않는다는 데 그 핵심이 있다. 오랜 시간을 들여 그림을 그리고 수정하기를 반복하는 다른 화가들과는 다르게, 그래피티 아티스트에게는 ‘빨리 그려넣고 도망치는’ 능력이 중요하다. 무단 침입이나 공공기물 훼손을 이유로 경찰에게 잡히기 전에 자리를 떠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짧은 시간 안에 작품을 남길 수 있도록 스프레이 페인트와 스티커가 자주 사용된다. 그래피티 아티스트들의 활동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선물 가게를 지나야 출구>에는 각각 영국과 미국 출신 아티스트인 ‘뱅크시’와 ‘셰퍼드 페어리’가 그림 그리고 도망치기 좋은 건물과 도시 구조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는 내용도 나온다. 구금되었다 풀려난 횟수가 일종의 그래피티 경력이라는 우스개도 있다.
‘그래피티(graffiti)’의 본래 의미는 ‘낙서’지만, 그래피티 아트는 단순한 낙서 그 이상이다. 삭막한 거리에 생동감을 불어넣기 위해서, 반전과 평화의 메시지를 선전하기 위해서 등 다양한 목적으로 그려진다. 작품을 남길 때는 경찰에 쫓기지만 정작 완성된 뒤에는 그 작품이 몰래 채집 당해 고가에 경매되거나 지역의 랜드마크가 되기도 한다.
한때는 거리를 더럽히는 범죄로만 여겨지던 그래피티 아트지만, 오늘날에는 하나의 미술 장르로서 그 입지를 굳혀 가고 있으며 활동 무대를 넓혀 실내로, 일상 속으로 서서히 들어오고 있다. 일례로, 우리는 사실 셰퍼드 페어리라는 아티스트를 알고 있다. 그가 ‘오베이(OBEY)’라는 이름으로 이미 우리 일상에 들어와 있기 때문이다.
상당수의 학우가 패션 브랜드로만 알고 있을 오베이는 사실 셰퍼드 페어리가 만든 그래피티 작품의 이름이었다. ‘OBEY’라는 글씨 위 퀭한 얼굴을 보라. 티셔츠나 후드티에서 봤을 이 남자, 레슬러 ‘거인 앙드레(Andre the Giant)’다. 어쩌다 이 얼굴이 페어리의 마음에 들었는지는 모른다. 그는 다만 현상학 캠페인의 일환으로 서로 아무 관련 없는 얼굴과 단어의 조합을 활용했을 뿐이다. 그는 이렇게 조합해 만든 아이콘을 ‘오베이 자이언트(Obey Giant)’라 이름붙이고 거리에 무차별적으로 도배해 대중에게 지속적으로 노출시켰다. 페어리의 추종자들과 그래피티 애호가들은 이를 재생산해 미국 전역으로 빠르게 퍼뜨렸고 대중은 스스로 인지하지 못한 사이에 익숙해져 오베이 자이언트를 기억하기 시작했다. 이 아이콘은 곧 페어리 자신을 가리키는 상징물이 되며, 그는 아이콘의 이름대로 ‘오베이 자이언트’라는 별칭을 얻는다. 그림이 시민의 머릿속에 각인되어 마케팅 효과를 톡톡히 보자, 그는 오베이를 패션 브랜드로 재탄생시켰다.
이처럼 그래피티는 다양한 방식으로 거리에 잠복해 있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머릿속으로 숨어든다. 지금 우리 주변에서도 찾을 수 있다. 우리 학교 근처 술집의 닫힌 셔터나 담벼락, 가로등에는 탄핵된 전 대통령을 풍자하는 그림이나 의미를 알 수 없는 문자가 쓰인 스티커가 붙어 있다. 어쩌면 다른 어느 장르보다도 우리 삶에 가까운 미술일 그래피티. 오늘 집으로 돌아갈 때는 거리의 작은 틈에 관심을 기울여 보는 것은 어떨까. 뜻밖의 작품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누군가가 우리 학교 안에 붙여놓은 스티커. 의미를 알 수 없는 말이 쓰여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