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황병준 기자 (hbj0929@skkuw.com)

 

지난달 25일 오후 1시 40분, 무연고사망자 박대흥(가명) 씨와 김명구(가명) 씨의 관이 실린 봉고차가 서울시립승화원으로 들어왔다. 봉고차는 검정색 리무진의 운구행렬 사이에서 홀로 회색이었다.
검정색 리무진들은 승화원 본관에 닿은 행렬의 머리부터 차례대로 정차했다. 멈춰선 리무진에서 관이 내릴 때 울음소리가 인파들 틈에서 터져 나왔다. 회색의 봉고차는 검정색 리무진이 줄지은 포장도로 옆 갓길에 정차했다. 봉고차에서 관들이 내릴 때, 인파는 봉고차를 등지고 멀었다. 관들은 차례대로 화장로에 입관했다.
경기도 고양시에 위치한 이곳 서울시립승화원은 유족들이 삼일장을 마친 후 시신을 화장하러 오는 곳이다. 이곳에서 무료장례지원단체 ‘나눔과 나눔’은 장례를 치른다. 시신이 화장되는 1시간 30여 분 동안 나눔과 나눔의 박진옥 사무국장과 부용구 전략기획팀장이 무연고사망자의 대리상주가 된다.
장례는 오후 2시 2번 유족대기실에서 유족 없이 진행됐다. 조사(弔詞)를 읊기 전 박 사무국장이 소개한 고인들의 짤막한 신상에 따르면, 박대흥(가명) 씨와 김명구(가명) 씨는 서로 다른 삶을 살다가 같은 죽음을 맞았다. 다른 지역에서 제각기 살아왔던 그들은 같은 57년생으로 병원에서 사망했으나 사후에 가족들이 그들의 시신을 인수하지 않았다. 부 팀장은 “장례비용이 없어서 시신 인수를 거부하는 사례가 많다”며 “유족이 시신 인수를 거부하는 경우에도 무연고사망자 처리가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장례가 치러진 2번 유족대기실은 건물 2층 복도 끝에서 한 평 남짓했다. 2번 유족대기실 옆 3번 유족대기실은 의자에 걸터앉아 자고 쉬는 유족들로 들어차 있었다. 옆으로 줄지은 4,5,6번 유족대기실도 들숨과 날숨으로 팽팽했다. 숨소리 붐비는 복도의 끝에서, 유족 없는 한 평 방은 다만 헐거웠다.
오후 2시 50분 출관한 두 고인의 뼛조각들은 모두 큼직했다. 나중에라도 유족이 찾아와 유전자 검사를 의뢰할 수 있기 때문에 일반 사망자들처럼 유골을 빻지 않고 크게 조각만 낸다. 유족참관실 유리창 너머에서 승화원 직원이 뼛조각들을 분골함에 쓸어 담았다.
2개의 분골함은 2개의 관을 실어 날랐던 회색 봉고차에 다시 실렸다. 박 사무국장은 “이 분골함들은 봉고차에 실려서 이곳으로부터 30분 정도 떨어진 파주의 ‘무연고사망자 추모의 집’으로 옮겨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곳에서 분골함들은 10년간 보관돼 있다가 보관기간 동안 찾는 이가 없으면 처리된다.
분골함들을 차에 실어 보내고 오후 3시 분향소로 향했다. 위패를 태우며 고인의 마지막 길을 기도하기 위해서였다. 고인의 이름이 적힌 위패가 타들어 갈 때 재가 바람을 타고 위로 솟았다. 흩날리는 재의 색이 검정색과 회색 사이에서 엎치락뒤치락했다.
고개 숙여 묵념하는 기자의 등 뒤로 위패를 든 인파가 들끓었다. 인파는 등 뒤에서 가까웠고, 타들어 갈 모든 재의 색이 회색과 검정색 사이에서 구분되지 않을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