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브 재즈 카페 ‘천년동안도’ 스케치

기자명 장소현 차장 (ddloves@skkuw.com)

사진 | 우성곤 기자 hlnsg@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3월의 첫날, 봄의 시작을 알리는 빗방울이라기엔 무거웠고 겨울의 끝을 알리기엔 가벼웠다. 종로3가 전철역 5번 출구로 나와 소란스러운 거리에서 조금만 고개를 돌리면 어느새 그 시절 음악의 메카에 있음을 깨닫게 된다. 음악을 꿈꾸는 사람들의 ‘낙원’, 1980년대 악기에 대한 수요 증대로 호황을 누리던 낙원상가 아래 골목을 걷다 보면 어렵지 않게 라이브 재즈 카페 ‘천년동안도’ 간판을 발견할 수 있다.
라이브 재즈 카페 '천년동안도'의 외관.
사진 | 우성곤 기자 hlnsg@

호텔 1층에 자리 잡은 천년동안도 카페 옆으로는 옛 정취를 머금은 세련된 한옥 골목이 이어진다. 창밖에서 들여다본 카페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입구에 자리 잡은 피아노와 드럼이었다. 오후 여섯 시, 카페가 오픈하자마자 가게로 들어선 기자들은 흘러나오는 재즈 선율에 매료되었다. 벽 한 면을 가득 메운 재즈 앨범들과 카페 천장을 장식하고 있는 재즈 연주자들의 사진. 은은한 조명이 연출하는 아늑한 분위기 속 창밖의 빗방울은 음악 소리를 타고 흐른다. 옆 테이블에 방해가 되지 않을 거리만큼 떨어져 있는 테이블들과 연주자의 땀방울이 보일 정도로 가까이 위치한 무대는 손님들로 하여금 어느새 재즈 선율에 심취하게 한다. 서로의 음을 방해하지 않되 밀고 당기며 조화를 이루는 재즈 음악은 이어폰을 통해 혼자 즐기기보다 함께 들을 때 그 진정한 매력을 느낄 수 있다.
공연 시간이 가까워져 오자 데이트를 온 젊은 연인부터 친구들과 음악을 즐기러 온 무리로 순식간에 카페의 자리가 채워졌다. 악보를 든 연주자 역시 손님들 옆 테이블에 자리 잡아 공연을 준비했다. 선곡되었던 배경음악이 잔잔해지고 손으로 박자를 맞추며 여성 보컬의 묵직한 목소리가 피아노 선율에 실렸다. 카페 전체를 메우는 재즈 듀오의 노랫소리에 절로 몸을 들썩이게 된다. 손님들의 작은 소음 역시 각자의 이야기를 싣고 음악이 되어 듀오가 연주하는 악보의 음표를 그려갔다. 음악이 끝나자 음식을 만들던 종업원의 박수를 시작으로 뒤이어 손님들의 박수가 이어졌다.
카페와 호텔을 연결하는 문을 열고 들어오는 손님들의 모습과 귀를 메우는 재즈 음악 소리는 재즈 영화 한 장면 속에 들어와 있는듯한 느낌을 들게 한다. 피아노 연주자와 눈짓을 주고받으며 보컬리스트는 음을 이어간다. 어느새 흥얼거리며 따라 부르게 되는 곡 <Alice in Wonderland>를 마지막으로 30분가량의 1부 공연이 끝이 났다. ‘밖의 날씨는 신경 쓰지 말고 우리 둘이 여기 아늑한 곳에서.’ 2부 공연의 첫 곡이 흐르자 창문 밖 비 오는 풍경을 가만히 내다보게 됐다. 빗방울은 오래도록 그치지 않았다. 피아노와 보컬로만 이루어진 1부 듀오 공연과 달리 2부 공연은 여러 악기가 소리의 조화를 만들어 냈다. 카페 내부에 흐르던 배경음악 위에 피아노 소리가 얹어지고 그 위에 색소폰, 드럼, 기타 소리가 더해진다. 음원이었던 배경음악이 어느새 라이브 공연 곡이 되어버린다. 서로 조화를 이루며 이어가던 멜로디 중간 중간 각각의 악기는 현란한 솔로 연주로 자신만의 색깔을 더욱 드러낸다.
작은 북 두 개로 수십 가지 소리 빛깔을 선보이던 재즈 드러머는 손님들을 하나하나 지목하며 그들을 연주자로 초대했다. 손님들의 박수 소리는 하나의 악기가 되고 연주자들은 서로의 눈을 바라보며 음을 맞추어 갔다. 한결 잔잔해진 선율을 마지막으로 세 시간가량 이어진 공연이 마무리됐다. 카페를 나서는 발걸음에 어느새 재즈곡이 실린다. 그윽하게 어둠이 내려앉은 골목길에 참방이는 빗방울 소리는 흥얼거리는 재즈곡에 음을 맞추어 준다. 어렵게만 느껴졌던 재즈는 어느새 주위의 소음과 음을 맞추고 그 멜로디는 쉬이 멈추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