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장소현 기자 (ddloves@skkuw.com)

 

스포츠에는 종목을 막론하고 ‘2년 차 징크스’라는 말이 있다. 이는 첫해 성공한 선수들이 2년 차 시즌에서는 심리적 자만심과 상대편의 집중 견제로 인해 슬럼프를 겪는 현상이다. 그런데 대학에서도 이와 유사한 일이 발생하고 있다. 대학교 2학년이 되면 찾아오는 ‘대2병’이 바로 그것이다. 입시 관문을 무사히 넘었다는 기쁨의 유효 기간은 딱 1년이다. 자신감과 자존감이 넘쳐흐르는 ‘중2병’과는 정반대의 증상으로 대학교 2학년만 되면 학업에서 인간관계, 그리고 가치관까지 인생 자체가 혼란스럽고 허무해진다. 찬란히 빛나야 할 청춘은 대2병을 비롯한 여러 마음의 병으로 속절없이 힘들어하고 있다.

‘아프니까 청춘이다.’ 불안하고 불확실한 미래 때문에 오늘날 청춘의 아픔은 당연시되고 있다. △대외활동 △아르바이트 △봉사활동 △학점 등 20대 청춘이 노력을 기울여야 할 영역은 광범위하다. 하지만 대학 시절 내내 이어지는 그들의 노력은 취업의 잣대로 이어져 공허함만을 가져온다. 남들에 비해 초라하게 보이는 스펙에 그림의 떡이 되어버린 취업, 청춘의 빛은 바래졌고 마음의 병을 남긴다. 아픈 청춘의 단면은 그들 사이에 떠도는 신조어를 통해서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취업포털 ‘사람인’이 지난달 29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인생의 허무함을 느끼고 방황하는 대학교 2학년 시기를 빗대어 ‘대2병’이라 부르며, ‘사망년’은 스펙 준비에 고통받는 대학교 3학년 시기를 나타낸다. 또한 학점과 토익만으로 취업할 수 있었던 세대가 오스트랄로스펙쿠스라면, 학점, 토익 외에도 자격증, 공모전, 어학연수 경험 등이 필요한 요즘 구직자들은 '호모인턴스'라 불린다. 현 세태를 풍자하는 이러한 신조어는 자조하는 청년들 사이에서도 흔히 쓰이고 있다. 상대적으로 취업 문이 더 좁아진 인문계열 학생들 사이에서는 ‘문송합니다(문과라서 죄송합니다)’라는 말도 등장했다. 한국교육개발원 자료에 따르면 2014년 기준 인문사회계열 전공자 취업률은 45.5%로 이공계열 전공자 취업률 65.6%보다 20.1% 낮은 수치를 나타냈다. 이 때문에 복수전공으로 취업 경쟁력을 가지려는 학생들의 움직임이 이어지지만, 이 역시 완벽한 수단은 되지 않는다. 실제 우리 학교 김수진(사학 15) 학우는 “원전공이 좋아서 선택했지만 인문계열이기에 취업이 쉽지 않은 게 고민이었다”며 “이 때문에 복수전공을 수강 중이지만 적성에 맞는지도 확신이 들지 않고 복수전공을 해도 확실한 취업으로 이어지지 않기 때문에 불안하다”고 말했다. 

인터넷에 나도는 대2병 진단표
□ 다른 사람과 스펙을 비교하며 자신을 비하한다. 
□ 평소보다 우울해진다.
□ 미래에 대한 걱정이 많다.                                   
□ 전과(轉科)나 휴학을 고민한다.
□ 진로에 대해서 끝없이 고민하지만 결정하지 못한다.
□ 세상에서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 SNS에 나의 상태를 수시로 올리고 토론, 주장을 펼친다.
□ 중고생을 보며 “저때가 좋았지”라는 말을 자주 한다.
□ 자기 스케줄을 자꾸 확인한다.
□ 취업 압박에 못 이겨 포기해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10개 항목 중 5개 이상에 해당하면 ‘대2병’을 의심해봐야 한다.

하지만 이러한 세태를 모두가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다. 각 대학교는 교내 심리센터, 카운슬링센터 등에서 학생들이 그들의 상처를 위로받을 수 있는 심리 상담 등을 진행 중이다. 더욱이 최근에는 학생들이 심리 상담에 대해 느끼는 심적 문턱이 낮아져서 교내 상담 센터의 효율성이 더욱 높아지고 있다. 우리 학교 카운슬링센터(센터장 이동훈 교수·교육)의 경우 인사캠과 자과캠을 합쳐 하루 평균 28명의 학생이 찾는다. 이는 최근 심리 상담이 정신적 문제가 있어서 받는다는 인식에서 스스로에 대해 되돌아보며 자신을 이해할 기회라는 인식으로 변했기 때문이다. 인사캠 카운슬링센터 조영희 상담원은 “학생들이 스스로에 대해 제대로 모르기 때문에 자신이 가고 있는 길에 대해 불안감을 느끼는 것 같다”며 “자신을 믿고 지금으로도 충분히 빛난다는 걸 잊지 않았으면 한다”고 조언했다.
학교를 벗어나서는 아픈 청춘을 위로하는 다양한 문화적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서울시에서는 시민들에게 위로와 휴식을 제공하기 위해 지난해 3월부터 12월까지 힐링프로젝트 '마음'을 시행했다. 프로젝트는 마음에 위안을 줄 수 있는 이벤트들로 채워졌다. 소리갤러리 내부는 자연숲을 재현한 초록빛 미디어아트 공간으로 자연의 햇빛을 닮은 조명과 여러 층으로 겹친 천을 이용해 도심 속 숲을 연출했다. 심리안정에 효과가 있는 음악과 스트레스 해소에 좋은 피톤치드가 어우러져 심신을 안정시키는데 도움을 주었다. 이어 갤러리 출구부분에는 마음에 편안함을 줄 수 있는 명사들의 조언 등을 노출시켜 SNS 등으로 사랑하는 이에게 편지로 전달할 수 있도록 했다. 시민들에게 가장 큰 호응을 얻은 이벤트는 ‘마음약방’이었다. 이는 서울문화재단에서 주최한 것으로 꿈소멸증, 월요병 말기 등 재치 있는 병명에 대한 처방전을 받아 볼 수 있는 자판기 형식의 치유 캠페인이다. SNS를 통해 퍼진 마음약방은 마음을 치유하길 원하는 사람들의 끊임없는 발길로 연일 매진됐으며 작년 2월 서울시청 시민청에 처음 설치된 이후 대학로 서울 연극센터와 대구문화예술회관 등에서도 만나볼 수 있게 됐다.
마음의 문을 활짝 연 ‘느낌이’ 느낌이를 오늘 당신의 기분으로 채워보세요.
ⓒ느낌 가게 제공

대학생들이라면 자주 찾는 카페들에서도 차 한 잔의 여유와 함께 위로를 받을 수 있다. 본인이 어떤 느낌을 느끼는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인지하는 과정을 도와주는 느낌 가게, 멘토링과 심리치유를 받을 수 있는 힐링 카페, 전문적인 상담을 받을 수 있는 심리 카페 등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정석진(신방 14) 학우는 “머리가 복잡했는데 힐링 카페를 다녀오니 나에 대해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어 머릿속이 정리되는 기분이었다”며 만족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청춘은 충분히 아플 수 있다. 하지만 그 아픔이 당연히 받아들이고 인내해야 하는 요소는 아니다. 다만 노력으로 인한 아픔이 적절히 치유했을 때 그 상처는 의미를 가지며 그는 비로소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