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장지원 기자 (wontheph7@skkuw.com)

현재 위즈돔에는 서울에만 1,600명 이상의 ‘사람책’들이 등록돼 있다. 사진작가, 수공예 장인부터 인문학자, 소설가는 물론 싱글맘의 노하우, 워킹홀리데이 경험 대학생에 이르기까지 그 면면은 다양하다. 지금까지 이뤄진 만남은 5,500건, 참여한 사람은 3만 6,000명이 넘는다. 이런 정보의 홍수 속에서 어떻게 듣고 싶은 이야기를 찾아갈 수 있을까.

위즈돔에서 활동하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이미 개설된 만남에 참여하는 것이다. 위즈돔 홈페이지의 ‘참여하기’ 카테고리에서 유형과 지역을 선택하면 날짜가 가까운 순으로 개설된 만남을 보여준다. 각 만남의 제한 인원은 보통 5~10명 내외지만, 단 2명을 기다리는 모임도, 수십 명이 함께할 수 있는 모임도 있다. 보통은 참여자가 2명만 돼도 만남이 성사된다. 당일 공간대여비나 간식비를 포함한 참가비는 1~2만 원가량이 대부분이지만, 활동 내용이나 커리큘럼에 따라 재료비나 수강료를 따로 책정하기도 한다.

무심코 스크롤을 내리던 중 기자의 눈에 들어온 것은 위즈돔이 서울시 및 서울시 식생활종합지원센터(이하 식생활센터)와 함께 운영 중인 ‘식생활도서관 음식남녀’ 프로젝트였다. 그 중 ‘맛 철학자’를 자처하는 청강문화대 푸드스쿨 김현숙 교수가 음식 평론가 이재용의 <외식의 품격>을 소재로 토요일 만남을 열어두고 있었다. 페이스북 계정으로 로그인하고 연락처를 입력, 참가비 1만원을 결제한다. 5분도 지나지 않아 주말을 기다릴 이유가 생겼다.

 

지난 12일 토요일 점심, 청강문화산업대학교 푸드스쿨 김현숙 교수가 성수동의 한 카페에서 '맛철학가 김현숙 교수와 음식 읽는 사람들' 만남을 주최하고 있다.

 

토요일 오전 강동구의 한 음식점에 도착했다. 먼저 온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김 교수 외에 △대전에서 올라온 주부 △대학원 재학 중인 사회복지사 △식생활센터 담당자 △음식 블로그를 운영 중인 직장인이 그날의 참석자들이었다. 아직은 어색한 자기소개 후 점심을 시작했다.

약속장소였던 ‘이남장’은 서울시가 2015 나트륨 줄이기 캠페인의 일종으로 선정한 6개 저염식 식당 중 하나다. ‘음식남녀’를 지원하는 식생활센터의 추천이었다고 한다. 김 교수는 이야기로 가득 찬 사람이었다. 옆 테이블의 일본인 손님들을 보고는 일본의 탕 음식 문화를, 참석자 한 명이 전남 장흥 출신인 걸 알고는 제자들과 장흥 특산물인 고대미와 차를 체험하러 간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식사를 마치고도 이야기는 잡담을 더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우리는 김 교수가 몸담은 청강대에서 운영하는 성수동의 ‘카페 성수’로 자리를 옮겨 책 낭독을 시작했다. 마침 참석자 중에 전직 카페 직원과 모카 포트 마니아가 있었던 터라 자연히 주제는 책 중에서도 커피에 관한 장이 됐다. 한참 참석자들의 의견을 듣던 김 교수는 도쿄 슬럼가에서 40년 이상 영업한 일본 전설적인 ‘카페 바하’의 주인 내외 이야기로 운을 뗐다. 이야기는 이내 전 세계의 고집스러운 농부들로, 한국의 WWOOF(Willing Workers On Organic Farm) 봉사활동자들로 넘어갔다. 그리고 다시 <외식의 품격>을 거쳐 김 교수로 돌아왔다. 책의 저자 이용재는 확고한 기준 탓에 반발도 많이 사는 사람이지만, 김 교수는 그 깐깐함도 필요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You are what you eat(당신이 먹는 것이 바로 당신이다)’는 속담을 인용하며 음식을 고르는 것이 함께할 사람을 고르는 것처럼 신중한 결정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더 많은 사람을 만나고 싶었던 차에 식생활센터의 소개를 듣고 바로 ‘음식남녀’에 참여했다고 한다. 그 날은 김 교수가 개설한 네 번째 만남이었다. 위즈돔에는 처음부터 여러 회를 계획하는 만남도 있고, 인기가 좋아 몇 차례씩 앵콜을 이어가는 만남도 있다. 참석자들도 한 사람책을 여러 번 만나러 온다. 이날 모임에는 단순 친목도모로만 끝나는 동호회 활동이 싫어 위즈돔을 찾았다가 김 교수와의 지난 만남에 반해 다시 찾아온 사람도 있었다. 반대로 김 교수와의 인연으로 위즈돔을 알게 되었는데 이제는 위즈돔의 포맷에 반해 언젠가 자신도 사람책으로서 만남을 열고 싶어졌다는 사람도 있었다.

마칠 시간이 되자 테이블은 다음 모임 계획으로 다시 떠들썩해졌다. 추석이 지나면 한옥스테이를 하며 한식 특집 만남을 갖자며 화기애애해진 그들은 이미 남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