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시마 3주기 추모 행사 스케치

기자명 김도희 기자 (dhayleykim@skkuw.com)

“지금이 포스트-후쿠시마 시대라 하지만, 오히려 상황은 후쿠시마 사태 이전으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지난 11일 오후 8시, 신촌역 6번 출구 앞에 흰색 방진복을 입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몇몇은 ‘핵 Out’, ‘No more 후쿠시마’ 등의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있었고, ‘핵발전소 폐기하라’는 글을 적은 헬멧을 쓰고 있기도 했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 이들을 쳐다봤다. 후쿠시마 3주기 추모 행진이 막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우리나라와 일본에서는 2012년부터 매년 3월 후쿠시마 사태 추모 행사가 열린다. 후쿠시마 원전사고로 인한 피해자들을 추모하고 탈핵을 주장하기 위해서다. 이번 추모 행진을 주최한 청년초록네트워크(준)은 올해 초 있었던 청년초록캠프에서 생태주의에 관심이 있는 청년들이 모여 조직했다. 생태주의를 지향하는 사회를 만들어보자는 취지에서다. 이들은 추모 행진 외에도 지난 13일 고려대에서 밀양 송전탑 관련 간담회를 열었고, 14일에는 대한문에서 진행된 ‘유한숙 어르신 추모제’에 참여했다. 이번 주부터는 생태주의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을 모아 세미나를 진행할 예정이다. 여기에 탈핵 운동을 주요 활동으로 하는 청년좌파(준)이 힘을 모아 공동주최했다.
본격적인 행진에 앞서 참가자들의 발언 시간이 있었다. 이날 △고려대학교 새내기 박신형 씨 △좌파노동자회 허영구 대표 △청년초록네트워크(준) 김성빈 대표 △청년초록네트워크(준) 오경택 씨 등이 자유롭게 발언했다. 좌파노동자회 허 대표는 “탈핵 운동은 생명·인권·평화운동이다”며 “우리의 생명과 생태의 보존을 위해 핵을 반대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한편 박신형 씨는 “피해자가 늘어나고 있음에도 원전 개발이 지속되는 상황이 부당하다고 느껴서 나왔다”고 행사 참가 이유를 밝혔다.

▲ 후쿠시마 3주기 추모 행사 참가자들이 행진하고 있다. / ⓒ김민

“후쿠시마 3년째다, 핵발전소 폐기하라!” 참가자들은 국화를 한 송이씩 집어 들고 행진을 시작했다. 연세로를 따라 걸으면서 구호를 외치기도 했다. “안전한 참치!”를 부르짖는 청년초록네트워크(준) 김 대표의 목소리에 곳곳에서 웃음이 터졌다. 단체로 방진복을 입고 행진하는 모습에 시민들은 관심을 가지고 지켜봤다. 지나가다가 행진에 끼어 함께 걷기도 했다. 행진에 참여한 고려대학교 학생 김소연 씨는 “홍보물을 보고 탈원전·탈핵의 취지에 공감해서 오게 됐다”고 말했다. 명물거리 쪽의 작은 공원에서는 핵 문제의 심각성을 보여주는 퍼포먼스가 있었다. 물고기 모형이 들어 있는 수조에 저승사자 분장을 한 참가자가 색소를 풀어 넣으며 방사능 오염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내용이었다. 우연히 행진에 동참하게 된 김진형 씨는 “원전 문제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볼 기회가 된 것 같다”며 행사에 참여한 소감을 밝혔다.
이들의 걸음이 멈춘 곳은 M밀리오레 앞이었다. 이곳에서 가수 ‘상추와 깻잎’과 ‘회기동 단편선’의 공연이 있었다. 참가자들은 함께 어우러져 노래를 부르고 환호하며 피로를 씻어냈다. 행사를 마무리하며 청년좌파(준) 김요한 집행위원장은 “사람들 머릿속에서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점점 잊히고 있지만, 핵은 그 자리에 그대로 있다”며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사람들에게 계속 후쿠시마를 상기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행진 내내 들고 걸었던 국화를 제단에 헌화하며 행사는 끝났다.
두 시간가량의 행진과 공연이 끝나자 이미 날은 완전히 저물어 있었다. 달보다 간판 불빛이 더 밝은 밤. 도심 한복판에서 울려 퍼지는 이들의 목소리는 우리 사회의 원전 문제에 경종을 울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