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나영인 기자 (nanana26@skkuw.com)

기존 가해자 중심적 시각 벗어나,

피해자 맥락 고려해 바라봐야,

성폭력 통념 바꾸려는 노력도

▲ 피해자 중심주의 원칙은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를 방지한다.

/ 김은솔 기자 eunsol_kim@

‘피해자 중심주의’ 원칙은 피해자의 고통과 심리상태 등을 고려해 피해자의 입장에서 사건을 바라본다는 원칙이다. 이 원칙은 성폭력 사건을 바라보는 시각이 사건의 전체적인 맥락보다는 ‘객관’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가해자 중심’이었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여자가 꽃뱀 아니야?” “피해자의 평소 사생활이 문란하대.” “진작에 싫다고 거부하지 않고 뭐한 거야?” “역시 여자를 고용하면 시끄러워져.”

성폭력 사건 이후 피해자들은 제3자 혹은 가해자에게 이런 2차 가해에 쉽게 노출된다. 피해자 중심주의는 이런 2차 가해에서 드러나는 가해자 중심적 시각을 해체하고, 피해자의 시각에서 사건을 재구성하고자 한다. 한국성평등상담소 관계자는 “성폭력이란 것은 피해자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고는 성립될 수 없는 개념”이라며 “성폭력 사건의 합리적인 해결을 위해서는 피해자 중심주의가 필수적이다”라고 말했다.
한편 피해자 중심주의에 대해 ‘피해자의 말만 무조건 믿어주는 제멋대로주의냐’ ‘가해자의 얘기를 들어주지 않는 건 불평등하다’ 등의 비판이 일기도 한다. 그러나 피해자 중심주의는 피해자의 진술을 무조건 믿어주는 것이 아니다. 피해자가 처했던 상황이 왜 피해자에게 폭력적으로 다가왔는지를 고려하며, 관련 증거나 정황과 진술이 맞는다면 물적 증거가 없더라도 상황의 종합성을 고려해 유죄판결을 내릴 수도 있다는 것을 말한다. 또한 피해자 중심주의가 불평등한 차별이라는 것은 이 원칙이 등장한 배경을 이해하지 못한 문제 제기다. 피해자 중심주의가 이미 가해자의 시각에서 기존의 성폭력 사건을 바라보고 있는 불평등한 상황을 해결하고자 나온 원칙이기 때문이다.
 

중앙대 성평등 상담소 이어진 전문연구원은 “피해자 중심주의 원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성폭력에 대한 잘못된 통념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성폭력에 대한 잘못된 통념은 다양하지만, 그중 가장 일반적인 시각은 ‘성폭력의 원인은 성욕’, ‘성기삽입과 같은 극단적인 형태만 성폭력’이라는 시각이다.
성폭력의 원인이 성욕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남성의 성충동을 억제할 수 없다고 주장하며, 성폭력을 ‘의도적이지 않은, 어쩔 수 없는’ 것으로 규정한다. 동시에 성욕을 일으키는 피해자의 옷차림이나 강력하지 않은 거부 의사 등을 문제시하며 피해자에게 성폭력의 책임을 전가한다. 그러나 성폭력은 사회적 저변에 존재하는 권력관계에 의해 발생한다. 성폭력 사건의 발생 유형을 봐도 △비장애인 - 장애인 △상사 - 부하 △남자 - 여자 등이다.
 

또한 성기 삽입만을 성폭력으로 보는 것은 남성 행위 중심적인 시각이다. 한국민우여성회는 성폭력을 ‘강간이나 강제추행뿐만 아니라 △언어적 성희롱 △음란성 메시지 △몰래카메라 등 상대방의 의사에 반해 가해지는 모든 신체적, 정신적 폭력’이라고 정의한다. 성폭력을 성기삽입으로만 바라본다면 여성만이 성폭력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편견을 낳는다. 성폭력은 사회적 관계 속 약자에게 가해지는 것이기에 남자도 피해자가 될 수 있다. 예로, 대학 내 학과에서 여자의 비율이 현저히 높고, 남자가 소수일 때 여학생들이 남학생 한 명을 두고 놀림감으로 삼으며 놀기도 한다. 그 가운데 농담으로 던진 성적 발언으로 남학생이 성적 수치심을 느낄 수 있는데, 이 경우 ‘남자가 무슨 성희롱을 당하느냐’며 남성 피해자의 맥락이 무시되는 경우가 빈번하다.
 

덧붙여 성폭력의 가해자가 일반인들과는 다른 악마와 같은 존재로 분류되는 것도 잘못된 선입견이다. 성폭력은 일상에서 자주 일어나는 아주 가까운 일이다. 김초롱(철학11) 우리 학교 문과대 여학생위원회 회장은 “여성주의 단체에 있는 나조차도 성추행 가해자와 2차 가해자가 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없다”며 “성추행은 내가 모르는 사이에 상황에 대한 이해 없이 내뱉은 말과 표현들로 인해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반성폭력 운동으로서 피해자 중심주의가 주창된 지도 20여 년이 지났다. 한국성평등상담소 관계자는 “아직 피해자 중심주의 원칙이 완전히 받아들여지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고 전했다. 잇따른 성폭력 사건에 대한 시민들의 분노가 들끓고 있다. 성폭력 사건의 예방과 해결을 위해서라도 피해자 중심주의에 대한 인식 확산이 필요한 실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