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신혜연 기자 (shy17@skkuw.com)

전기수는 이야기를 파는 사람이다. 조선시대에 등장한 그들은 사람 많은 거리에서 책을 읽어주고 돈을 벌었다. 조선시대에 전기수라는 직업이 등장할 수 있었던 배경은 높은 문맹률과 낮은 책 보급률이다. 글도 모르고, 책 살 돈도 없던 서민들은 전기수에게 동전 몇 잎을 던져주고 이야기에 대한 갈증을 풀었다.
이렇듯 전기수는 전근대적인 구술문화의 대표적인 예다. 우리나라에서 1930년대까지 광범위하게 나타났던 전근대적인 구술문화는 공동체적 독서와 음독(音讀)으로 표현된다. 공동체적 독서는 △전기수와 같이 한 명이 읽고 고민하여 이야기를 풀어내는 형태 △각자가 책을 읽어 와 이야기하는 형태 △같이 모여 책을 읽는 강독의 형태를 포함한다. 공동체적 독서가 전근대적 현상만은 아니다. 그러나 높은 문맹률과 낮은 책 보급률이라는 전근대의 특징들이 첫 번째 형태의 공동체적 독서를 활성화 시키고, 전기수를 등장시킨 것은 사실이다. 우리 학교 국어국문학과 천정환 교수는 “전기수의 구체적인 활동에 대해 남아있는 기록이 많지 않고, 제각기 활동한 탓에 파악하기 쉽지 않다”면서도 “문맹률이 높던 당시에 읽어주기 문화를 통해서 책 내용을 공유했다는 점, 그리고 함께 문화를 누리며 즐거움을 느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자신만의 내부의 골방에 고립되어 살고 있는 사람의 숫자가 조선시대의 문맹의 숫자보다 많으면 많았지 적지 않을걸. … 마음속으로는 누구보다 간절하게 소통을 원하면서 그 욕망을 겉으로 표현하는 데 서툴다는 것이 또 이런 사람들의 특징이야.” -이승우 <전기수 이야기>

2007년 현대문학상 수상작인 이승우의 ‘전기수 이야기’에서 실직자인 ‘나’의 아내는 ‘나’에게 현대판 전기수라는 직업을 권한다. 문맹률이 낮아지고 책이 대량 생산되면서 자취를 감춘 전기수는 ‘소통을 원하지만 고독할 수밖에 없는’ 개인들로 인해 재탄생된다.
전근대적 독서문화의 하나로 대표되던 전기수는 오늘날 그 의미를 잃은 걸까? 위 작품에서 볼 수 있듯 꼭 그렇지만은 않다. 천 교수는 “90%가 문맹이던 조선시대와 70%가 대학에 가는 오늘날 한국사회는 무척 다르지만, 한편으로 대학생들이 책 읽을 시간도 없이 바빠 긴 글을 읽는 힘도 약해지고 있는 건 사실”이라고 진단했다. 사전적 의미의 문맹자는 감소했지만, 독서력이 낮은 ‘책 문맹자’는 오히려 늘고 있다는 것이다. 덧붙여 천 교수는 ‘책라’의 진행자 한지훈 학우를 현대의 전기수에 빗댔다. 책에 대해 문맹상태에 빠진 대학생들의 독서력을 보완해 줄 기재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묵독(默讀)이 음독을 압도한 지금에도 공동체적 독서는 여전히 힘이 있다. 천 교수는 “공동체적 독서야말로 학생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공부”라고 말했다. 오늘이라도 마음 맞는 친구들과 독서모임을 꾸려보자. 전기수가 되어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것, 그 안에 문맹을 극복할 실마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