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나영인 기자 (nanana26@skkuw.com)

경제 담론 공세에 유명무실화된 생리휴가제

▲ 일러스트 유수빈 기자 newbien@
2003년 8월,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유급휴가였던 생리휴가가 무급휴가로 전환됐다. 이로써 생리휴가는 더 이상 의무조항이 아니게 돼 유명무실해졌다.
여성의 월경에 무신경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여성 근로자들이 생리휴가를 사용하기가 더욱 힘들어졌다.

생리휴가제가 무급휴가가 되기까지
1953년 근로기준법이 제정될 당시부터 생리휴가제는 있었다. 근로기준법이 개정되기 전 법률 제6507호 71조에는 ‘여성 근로자는 월 1일의 유급생리휴가를 쓸 수 있다’고 명시돼있었다. 이렇게 역사 깊은 제도지만 이에 반대하는 목소리는 1987년 남녀고용평등법이 제정될 당시부터 끊임없이 있었다. 경영계는 근로 여성의 지위향상과 복지증진에 기여하기 위한 남녀고용평등법이 제정됐기 때문에 생리휴가제까지 유지할 필요는 없다고 주장했다. 경영상 여성 고용 비용이 부담된다는 이유에서다. 이런 경영계의 요구는 2001년 11월 모성보호법이 시행되는 시기에 정점을 이룬다. 모성보호법은 여성의 신체적 특성을 고려해 근로환경에서 여성을 보호하기 위해 유급출산휴가 연장 등의 내용을 담은 제도다. 경영계는 모성보호법까지 통과된 시점에 생리휴가까지 남아있으면 여성고용비용을 증가시켜 기업의 여성고용의 기피 요인이 된다고 말했다. 결국 2003년 8월, 법정근로시간의 단축을 골자로 한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이에 따라 생리휴가도 무급휴가로 전환되며 점진적으로 무효화됐다.

경제 담론 vs 모성 담론
생리휴가제가 무급화되기까지 가장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은 생리휴가제가 여성고용비용을 증가시켜 여성 고용이 어려워진다는 경영계의 주장이었다. 이런 경제 담론은 90년대 후반 IMF 경제위기 이후 신자유주의가 주류 이념으로 자리 잡으면서 생리휴가제 폐지 주장에 힘을 실었다. 생산성 향상을 최고의 목표로 삼는 경영계는 생리휴가문제를 근로자의 삶의 질 문제로 보기보다 임금과 비용의 문제로 환원시켰다. 또한 세계화의 흐름을 주장하던 당시의 분위기를 따라 제도 자체의 정당성을 논의하기보다 외국에는 없는 제도라며 폐지를 주장했다.
모성보호법 제정이 논의되던 당시 경영계는 모성보호법 통과의 조건으로 생리휴가제 폐지를 내세웠다. 반면 여성계는 모성보호법과 생리휴가제가 권리의 수혜대상자가 다르다는 점을 내세워 생리휴가제를 지키고자 했다. 모성보호법은 출산을 앞둔 여성을 대상으로 하고, 생리휴가제는 전 근로 여성과 관련된 문제로 규정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모성의 범위는 축소됐다. 모성이 임신, 출산과 같은 생리적 현상으로 제한되면서 △가족 유지 △양육 △여성건강 등 모성의 사회권은 무시됐다. 이처럼 여성의 몸이 임신과 같은 재생산의 기능을 가진 것으로만 국한돼 여성의 몸에 대한 인식이 왜곡되는 결과를 낳았다.

 

인권 담론으로 공식 인정받은 생리공결제

▲ 일러스트 유수빈 기자 newbien@
생리휴가가 무급화 된 지 3년이 지난 2006년 3월, 전국 초·중·고등학교에서 생리공결제가 시행됐다. 시행 이전에는 월경으로 인한 결석은 병결로 처리돼 결석으로 기록됐으며 성적 처리 시 기존 성적의 80%만을 인정해 왔다. 그러나 생리공결제의 시행으로 월경으로 인한 결석은 출석으로 인정받게 됐고, 성적은 100% 인정됐다.

생리공결제가 제도화되기까지
2004년 9월, 한 중학교 교사가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서를 제출했다. 여학생들이 월경으로 인한 결석이 병결로 처리되는 것이 인권침해인지 판단해 달라는 내용을 담은 진정서였다. 오랜 기간의 검토 후 2005년 12월, 국가인권위원회는 이를 인권침해로 판단하고 모성보호와 여성의 건강을 위해 월경으로 인한 결석이 출석으로 인정되도록 권고했다. 이 결정이 초석이 돼 전 교육인적자원부는 2006년 전국적으로 생리공결제를 시행했다.

새롭게 떠오른 인권 담론
생리휴가제가 무급화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때에 생리공결제는 어떻게 제도화될 수 있었을까? 김서화 씨가 쓴 서울대학교 사회학 석사논문 <월경하는 여성과 몸의 권리>에 따르면 인권과 연관된 세 가지 요인이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월경에 대한 대안적 관점 등장 △학생과 청소년 인권운동 증가 △여교사의 보건휴가 문제 대두다. 김서화 씨는 “인권 인식의 확산이 생리공결제 제도화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고 할 수 있느냐는 문제제기도 있었다”며 “하지만 인권을 중요시하는 흐름 없이는 월경이 공적 영역에서 논의되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90년대 후반부터 월경은 사회적인 이슈로 주목 받으며 공적인 영역에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1999년부터 시작된 ‘월경페스티벌’이다. 이 페스티벌은 여성의 월경이 단순히 임신, 출산과 관련된 생리현상이 아닌 여성의 일상적인 경험임을 알렸다. 월경에 관한 이런 대안적인 관점과 더불어 학생과 청소년이 삶의 주체로 일어서야 한다는 인권운동도 급증했다. 또한 2003년 여교사들이 보건휴가와 관련해 국가인권위원회에 제기한 평등권 침해 문제도 여성의 인권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켰다. 국가인권위원회는 보건휴가 사용 시 필요한 폐경여부, 생리중단 사유 등을 기록하는 문진표를 평등권 침해라고 인정했다. 이와 같은 움직임들은 생리공결제가 여학생의 인권문제로 인식될 수 있게 했다.
생리공결제가 제도화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경제 담론, 모성 담론과는 다른 인권 담론이 있었다. 인권 담론은 여성의 월경이 한 인간의 일상적인 몸의 경험으로 간주해야 하며 이를 보호하는 생리공결제는 인권을 보호하는 것과 같다고 제시한다. 이는 모든 여성은 자신의 건강을 추구해야 한다는 ‘여성 건강권’과도 연관돼 있다. 이런 ‘인권’을 바탕으로 한 접근은 여성의 몸은 남성의 몸과 ‘다르다’는 점을 부각해 월경이 공적 영역에서 처음으로 인정받도록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