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회 ‘월경(越境)’ 생리공결제 대담

기자명 나영인 기자 (nanana26@skkuw.com)

현재 서울에 있는 대학 중 경희대, 한양대 등 10개 대학 정도만이 생리공결제를 시행하고 있다. 시행 중인 대학 내에서 생리공결제는 언제나 논란의 중심에 있다. 생리공결제의 실효성과 그 정당성 문제 때문이다. 진료확인서 제출이나 소변 검사 등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하는 일부 대학에서는 생리공결제의 실효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또 ‘오용과 남용의 우려’, ‘남성에 대한 역차별’ 등 정당성 논란도 있다. 이런 논란으로 몇 대학은 생리공결제 도입을 미루고 있다. 우리 학교는 현재 생리공결제를 시행하고 있지 않으며, 병결이나 기타 결석의 출석인정 여부는 교수의 재량에 맡겨져 있다. 이에 생리공결제를 둘러싼 논란과 여성의 월경에 대해 여성주의 학회 ‘월경(越境)’과 함께 이야기를 나눠봤다.

 

 

▲ '월경' 학회원들이 대담에 참여했다./ 나영인 기자 nanana26@

 -월경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은?
최장락(인과계열13):
검은 비닐봉투. 어렸을 때부터 누나들의 생리대 심부름을 많이 했다.
김민정(철학11): 진통제. 개인적으로 월경통이 심해서 진통제를 많이 먹었다.
김초롱(철학11): 관리하기 불편하다. 생리혈이 새면 안되고, 남에게 냄새가 전해지면 안 된다는 강박관념 때문이다.
최가은(철학12): 히스테리. 예전부터 많은 사람들이 사람이 예민할 때 ‘너 생리하냐?’고 묻지 않느냐. 그런데 그 히스테리가 정말 존재하는 것인지 아니면 사회적으로 만들어 낸 것인지 모르겠다.

-학창시절과 대학 생활 중 월경을 말하기 부끄러워했던 경험이 있나?
이해오름(독문11):
나는 남들보다 월경을 일찍 시작해서 어렸을 적에 월경에 대해 말하는 것이 왠지 창피했다. 학창시절 월경하는 날에는 화장실에 갈 때 가방을 통째로 가지고 다녔다. 당시에 ‘왜 숨겨야 하지?’라는 생각에 짜증도 났었고 숨기지 않고 편히 지내고 싶단 생각을 했었다.
최가은: 중학생 때는 공학이어서 생리 얘기를 숨기거나 조용하게 말하곤 했었다. 그런데 여자고등학교에 진학하고 나서는 생리가 여자들의 자연스러운 일상으로 자리잡아 공감대가 형성됐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말했다.
김민정: 대학에 들어와서는 출석 인정이 교수의 재량에 맡겨져 있으니 교수님에게 생리로 결석한다는 말을 하기 쉽지 않다. 그러다 보니 생리통이 정말 심해도 참고 수업을 들었던 적이 많다. 아파서 결석했을 때도 진단서를 요구받았고, 나중에 진단서를 가져갔는데도 면박 당했었다. 당시 내 몸의 경험을 무시하는 태도에 상처를 받았다.
이해오름: 대학에서 생리통 때문에 결석한 적이 있었다. 남자 교수님이셨는데 출석으로 인정해주시긴 했다. 하지만 남성과는 다른 몸을 가진 여성에 대한 인정이 아닌 ‘남자인 내가 선심 쓴다’는 식의 태도에 속상했다.

-생리공결제가 정당성이 없다는 얘기에 대해서 어떻게 보나?
박지아(정외12):
남성에 대한 역차별이라는 얘기가 있다. 현재 한국 사회는 월경을 하지 않는 남성에 맞춰 구조화돼 있다. 월경을 그런 남성의 기준에서 보고 비정상적인 것으로 취급하고 있다. 여성의 몸은 남성의 몸보다 열등한 것이 아니라 차이가 있는 것일 뿐이다. 그런 실질적으로 존재하는 ‘차이’에 따른 ‘권리’가 수반되는 것이다. 역차별이 아니다.
김초롱: 모든 여성은 건강해야 한다는 ‘여성건강권’때문에 생리공결제에 찬성한다. 모성호호를 위해서가 아니다. 여성이 존중받아야 하는 이유는 어머니가 되기 위한 존재라서가 아니라 인간이기 때문이다. ‘왜 여자 건강만 챙기느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당연히 모든 사람은 자신의 건강을 지킬 권리가 있다. 하지만 이제껏 여성이 스스로 자신의 건강에 대해 고민할 수 있는 기회를 사회에서 박탈했기 때문에 ‘여성건강권’을 따로 주장하는 것이다.
최장락: 학내에 남자건 여자건 생리공결제에 대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문화가 조성돼야한다. 여성에 대한 특별한 배려도 질타도 아닌,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자세 말이다. 생리공결제가 그를 위한 첫걸음일 것이다.
이해오름: 주변에 ‘생리가 무슨 벼슬이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김초롱: 맞다. ‘남자가 발기한다고 결석하지는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남근과 대응되는 것은 자궁이 아니다. 그런데 자궁과 남근을 같은 선상에 놓고 얘기하는 것은 잘못됐다.
최장락: 맞다. 비슷한 사례로 여성의 월경과 남성의 군복무를 같은 선상에서 비교하는 경우도 있다. 그 둘은 완전히 다른 층위의 얘기가 아닌가. 남성의 군복무와 여성의 임신과 출산 등을 비교하는 것은 무의미한 논쟁이다. 남자와 여자가 서로의 몸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생기는 논란인 것 같다.

-여성의 월경이 사회적으로 공론화되는 것이 금기시돼있는 것 같다.
김초롱:
중학교 때 선생님이 기술가정 시간에 여학생들이 부끄러워한다며 남학생들을 나가게 했다. 남자는 평생 여자와 함께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 존재인데... 남자들이 어렸을 때 여성의 몸에 대해 올바른 교육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이에 대해 몰지각한 것 같다.
장정우(인과계열13): 심지어 우리 윗세대는 남자는 기술 배우고 여자는 가정 배웠다더라. 그런 세대는 우리보다 더 여성에 대한 월경에 대해 이해가 부족할 것이다.
최장락: 미디어도 여성의 월경에 대한 왜곡된 인식을 조장한다. 미디어에서 첫 월경을 하는 여자에게 가족이 생리대를 넣을 파우치를 따로 주는 모습이 나온다. 그렇게 월경을 감춰야 할 것으로 보여준다.
김초롱: 그렇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여성의 몸의 경험인 월경에 대해 함께 사유해야 한다. 월경에 관한 논의가 음지에서만 돌고 공적 영역에서 이뤄지지 않는 것은 여성 건강에 대한 침해라고 생각한다. 이런 논의가 공적 영역에서도 활발히 이뤄지도록 여성들이 직접 월경에 대해 적극적으로 말해야 한다. 언어 밖의 세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세상의 어떤 것도 언어로 표현되기 전에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나 다름없다. 예를 들면 옛날에는 성폭력, 성소수자라는 단어가 없었다. 그런 말이 없었을 당시 사람들은 자신이 무엇에 억압받는지 몰랐다. 하지만 그런 것을 지칭하는 언어가 생기면서 우리가 구체적으로 어떤 것에 억압받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이로써 자신에 대해 사유하고 그것을 설명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대학 내 여성의 월경에 대한 인식 부족을 어떻게 해결해 나갈 수 있을까?
김초롱:
이렇게 신문에 기사가 나가는 것처럼 월경이란 주제가 밖으로 나오는 것이 중요하다. 또 교양 수업이 필요하다. 꼭 강의가 아니더라도 이번에 13학번 새내기들이 문과대 새내기새로배움터에서 페미니즘에 대해서 다양한 방법을 통해 교육받았듯이 말이다.
최장락: 그런 일회성 교양 수업과 함께 학내 여성주의 강의나 프로그램 같은 장기적인 교육도 필요하다.
박지아: 학회를 통해서도 여성주의에 고민하는 지점을 하나로 표출할 수 있다. 하지만 공부에 집중하는 학회도 좋지만, 총여학생회처럼 목소리를 직접 모으고 실천지향적으로 움직이는 단위가 필요하다.

◇학회 ‘월경(越境)’=지난해 2학기에 생긴 문과대 내 여성주의 학회다. ‘경계를 뛰어 넘다’는 뜻인 월경(越境)은 여성에게 강압되는 가부장주의적 사회의 틀을 넘어선다는 의미를 지닌다. 세미나와 토론 외에도 새내기새로배움터 주체를 대상으로 △성 평등 상담 △자문 △여성주의 교양 등을 진행하고 있다. 올해 4월 6일, 철학과 성정치부로 정식 인준 받아 활동 중이다.